녀석을 처음 데려오던 날이 아직도 생각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17년이 지나 있었습니다.
한창때는 집 안을 날아다니던 녀석이 이제는 하루 대부분을 한자리에서 보냅니다. 17살이면 사람 나이로 80대 중후반이라고 하더군요.
이제는 고양이를 키운다기보다, 녀석의 속도에 맞춰가는 삶이 됐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1. 집 구조를 수평으로 바꿨습니다
예전엔 캣타워 꼭대기가 녀석의 주 무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높은 곳 올라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처음엔 그냥 귀찮아서 그런가 했는데, 가만히 보니 관절이 예전 같지 않은 거였습니다.
그때부터 가구 배치를 바꿨어요. 바닥 곳곳에 낮은 방석을 깔고, 창가 자리엔 계단식 스텝을 놓아서 굳이 점프 안 해도 올라갈 수 있게 해줬습니다.
덕분에 저도 녀석 눈높이에 맞추려고 바닥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어요.
2. 하루가 물과 밥 체크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젊었을 때는 자율 배식으로 두어도 알아서 잘 먹던 녀석이었는데, 노령기에 접어드니 음수량이랑 식사량이 매일 확인해야 할 숙제가 됐습니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기 쉬운 나이라 물을 제대로 안 마시면 바로 건강 악화로 이어지거든요.
물그릇을 집 안 동선마다 여러 개 배치했고, 높이도 코에 딱 맞게 조절해줬어요. 사료는 습식을 기본으로 하고 미지근한 물을 조금 섞어서 스프처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밥 먹는 모습만 봐도 그날 컨디션이 대충 보이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그게 자연스러운 루틴이 됐습니다.
3. 화장실 청소가 일과의 중심이 됐습니다
나이 들면 화장실 높은 턱도 장벽이 되더라고요. 입구가 낮고 넓은 걸로 교체하고, 잠자리 바로 옆으로 위치도 옮겼습니다.
노령묘는 화장실이 조금만 지저분해도 참아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방광염으로 바로 이어지거든요.
퇴근하면 제일 먼저 화장실 상태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배변 양이랑 횟수도 매일 체크합니다. 이상 신호를 제일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 거기더라고요.
4. 온도랑 습도도 녀석 기준으로 맞춥니다
노령묘는 체온 조절이 잘 안 돼요. 한여름에도 털 세우고 웅크리고 있을 때가 있고, 겨울엔 따뜻한 자리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요.
겨울엔 온열 매트를 깔아주고, 건조한 날엔 습도 관리에 신경 씁니다. 피부가 건조해지면 과한 그루밍으로 이어지고, 그게 탈모나 상처가 되거든요.
지금은 가습기 24시간 틀어두고 녀석 있는 공간 습도를 50~60% 유지하려 하고 있어요. 털 상태 보는 것도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5. 고요하게 곁에 있는 것이 전부가 됐습니다
예전엔 장난감 흔들며 같이 뛰어노는 시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냥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녀석은 이제 제가 뭘 하는지 크게 신경 안 써요. 그냥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이 정적인 시간이 낯설고 허전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게 오히려 더 깊은 교감이라는 걸 느껴요.
제가 다가갔을 때 가느다란 목소리로 골골송 내는 거, 17년이 쌓여서 나오는 소리인 것 같아서 그게 참 좋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녀석도, 저도 많은 걸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아마 17년을 같이 보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녀석 속도에 맞춰, 조금 더 느리고 조심스럽게 곁을 지킬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