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고양이가 밥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잘 먹던 캔도 외면했고, 좋아하던 간식도 냄새만 맡고 돌아섰어요. 사료 그릇 앞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급하게 병원에 갔고, 혈액검사에 엑스레이까지 찍었습니다.
그런데 수의사 선생님 말씀이 이랬어요.
"수치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다행스러운 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병명이 나오면 약이라도 먹이면 되는데, 검사는 괜찮다고 하고 고양이는 여전히 밥을 안 먹고 있으니까요.

집에 와도 밥그릇은 그대로였습니다
집에 오면 좀 먹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조용한 구석으로 들어가서 밥그릇을 가까이 가져가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냄새는 맡았어요. 그런데 먹지는 않았습니다.
아예 관심이 없으면 다른 문제인가 싶을 텐데, 냄새는 맡고 고민하다가 결국 안 먹는 그 모습이 제일 답답했어요.
억지로 먹여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다시 병원에 가야 하나.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했는데 집에서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근 며칠을 하나씩 되짚어봤습니다
검사로 바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집에 돌아온 뒤부터 최근 상황을 하나씩 생각해봤어요.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환경 변화였습니다. 최근 집 주변 공사 소리가 났고, 집안도 조금 어수선했거든요. 모래를 바꾼 건 아닌지, 탈취제 냄새가 강하지 않았는지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음으로 입맛 변화. 몇 년 동안 잘 먹던 사료도 어느 순간 싫어질 수 있어서 다른 브랜드, 다른 제형도 조금씩 시도해봤어요. 처음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는데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나이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검사 수치에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몸이 전반적으로 약해지면 씹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있거든요. 딱딱한 사료보다 부드러운 습식에 반응하는지도 살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 스트레스. 밥을 안 먹어서 병원에 갔는데, 그 과정 자체가 더 큰 자극이 됐을 수도 있어요. 이동장, 낯선 냄새, 검사, 주사. 예민한 고양이에게는 하루 종일 긴장할 만한 일이니까요.
억지로 먹이려다 멈췄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급해졌어요. 오래 굶으면 위험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왔으니까요.
그래서 습식에 물을 섞어 주사기로 먹여보려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입을 벌리는 것부터 스트레스였고, 억지로 넣으니 몸을 비틀고 결국 뱉거나 토해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무작정 먹이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스스로 먹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을지로요.
가장 도움이 된 건 기록이었습니다
원인을 너무 빨리 단정하면 오히려 더 흔들리더라고요. 사료 문제인가, 스트레스인가, 어디가 아픈데 검사에 안 나온 건가. 이런 생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럴수록 할 수 있는 건 더 자세히 관찰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하루 상태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얼마나 마셨는지, 소변과 대변은 봤는지, 밥그릇 앞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냄새만 맡는지 조금이라도 핥는지, 숨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이런 기록은 나중에 다시 병원에 갔을 때도 도움이 됩니다. "밥을 안 먹어요"보다 "이틀 동안 물은 조금 마셨고 소변은 봤는데 습식은 냄새만 맡고 먹지 않았어요"가 훨씬 정확하거든요.
기록을 하다 보니 막연한 불안이 조금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무력하게 바라만 보는 느낌에서, 그래도 뭔가 확인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바뀌더라고요.
작게 바꿔본 것들
집안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고양이가 자주 숨는 공간 근처에 물그릇을 하나 더 놓았습니다. 밥그릇 높이도 조금 올려봤어요.
습식은 너무 차갑지 않게, 향이 조금 올라오도록 살짝 데워서 줬습니다. 양은 아주 조금씩만 덜었어요. 한 그릇을 비우길 바라면 집사 마음만 더 조급해지거든요.
혀로 한 번 핥는 것, 아주 조금 먹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부터 조금씩 스스로 먹기 시작했어요.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고 스스로 다가와서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검사 결과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큰 이상이 없다는 말은 분명 다행스러운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곧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고양이는 말을 못 합니다. 아픈지, 불편한지, 입맛이 없는지 설명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집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씩 확인하는 것입니다.
먹는지, 마시는지, 화장실은 가는지, 평소와 다른 행동은 없는지.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느낀 건, 조급함보다 기록이 먼저라는 거였습니다. 불안해서 이것저것 바꾸기보다, 오늘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거부했는지 차분히 남겨두는 것. 말 못 하는 고양이를 위해 집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습니다.